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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버핏

 

 투자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고 그 컨텐츠 중에 하나로 대가들의 포트폴리오와 투자철학도 같이 정리하고 있어서 가장 먼저 워렌버핏에 대해서 정리해봤다. 이미 익히 알려진 내용을 살을 더 붙여 정리했다. 투자관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여러모로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글이 장황하니 필요한 부분만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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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의 투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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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워렌 에드워드 버핏 ( Warren Edward Buffett, 1930 년생)

 버크셔 헤셔웨이의 회장 겸 CEO 인 미국의 투자자, 비즈니스 거물이자 자선 사업가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자로 평가된다. 보험 회사 인 Geico, 배터리 제조업체 인 Duracell 및 레스토랑 체인 Dairy Queen을 포함한 60 개 이상의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보유 순자산은 2019년에 88B(약 100조)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부유 한 사람이다.

 

 유년시절 – 버핏은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 에서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하워드 버핏과 라일라 부부의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워렌은 어릴적 부터 돈에 관심이 많았고 처음 11 세에 주식을 샀고 13 세에 세금을 냈다. 어렸을 때부터 경제감각이 남달라 7살때 오마하 공공 도서관에서 빌린 책 [One Thousand Ways to Make $1000]을 읽고 감명을 받아 어린 시절 대부분을 벤처 기업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첫 번째 사업에서 버핏은 츄잉껌, 코카콜라 병 및 주간 잡지 판매했다. 할아버지의 식료품점에서 일했고, 고등학고 다니면서 신문 배달하고 골프공과  우표를 판매하면서 돈을 벌었다. 17살때 버핏과 친구가 핀볼기계 배치 사업을 하여 여러 곳에 기계를 가지게 된다.

 

 버핏은 주식 시장에 관심을 보였고 학생 시절에 아버지의 중개 사무소 근처 의 지역 증권 중개 고객 라운지에서 보냈다. 열 살 때 뉴욕으로 여행을 갔을 때, 뉴욕 증권 거래소 를 방문했고 . 11 살 때 Cities Service 3 주 산다. 고등학교때 그는 아버지가 소유 한 사업에 투자하고 40 에이커 농장을 샀다. 대학을 졸업했을 때 버핏은 9,800 달러의 저축 (오늘 약 105,000 달러)을 모으게 된다.

 

 1947년 버핏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에 입학했다.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는 자신의 사업에 집중하기를 원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대학진학을 요구한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네브래스카 대학으로 옮긴 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지원했으나 떨어진다.

 

그레이엄과의 만남

 “하버드 낙방 후  다른 대학원을 알아보던 중에 컬럼비아 대학의 소개 책자를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과 데이비드 도드(David L. Dodd). 어린 시절 청년은 두 사람이 함께 쓴 ‘증권 분석’을 읽은 적이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감명을 받기도 했다. 이제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컬럼비아 대학으로 가서 그레이엄과 도드에게 배우고 싶었다. 특히 자신이 숭앙해 온 가치 투자(Value Investing)의 대가 그레이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일반적인 지원서와 달리 사적인 내용을 담은 지원서가 효과가 있었는지 도드는 마감 시한을 넘기고 면접도 보지 않은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합격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버드와 달리 도드와 그레이엄의 선발 기준이 사회 지도자가 아닌 투자 전문가 양성이었다는 점이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버핏은 그토록 고대하던 가치투자의 거장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났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는 그레이엄의 수업에 푹 빠졌다. 스승의 ‘증권 분석’과 ‘현명한 투자자’를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고, 수업 중에 그레이엄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거의 매번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스승을 ‘숭배’한 그는 학점을 낮게 주기로 유명한 그레이엄이 가르친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 이런 성적은 그레이엄이 가르친 학생 가운데 버핏이 유일했다. 그레이엄의 수제자가 된 것이다. 버핏은 스승의 책과 강의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스승을 폭넓게 연구했다.  그레이엄이 보험회사 가이코(GEICO)의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승이 회장인 회사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1951년 초 워싱턴에 위치한 가이코 본사를 찾아 가서 경비가 열어 줄 때까지 문을 두드렸다. 버핏은 스승에게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스승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레이엄은 동료인 제리 뉴먼(Jerry Newman)과 함께 투자 회사 그레이엄-뉴먼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경영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그레이엄에게 스승의 회사에서 무보수로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스승은 유대인 채용 원칙을 들어 거절했다. 유대인인 그레이엄은 인종차별로 인해 금융권 취업이 어려운 유대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회사에서는 유대인만 채용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1951년 버핏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고향 오마하로 돌아왔다. 얼마 안 있어 아버지의 주식 중개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1년여의 적응기를 거치며 버핏은 능력 있는 주식 중개인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버핏은 주식 중개와 투자 강의를 하며 그레이엄의 책을 다시 정독했다. 책을 읽을수록 스승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식 중개인이 아닌 전문 투자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1954년 7월 드디어 고대하던 소식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그레이엄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버핏은 연봉이나 근무 조건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승낙했다. 그것도 모자라 정식 출근일보다 한 달 먼저 출근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 아들이 태어나자 아들의 이름을 하워드 그레이엄 버핏이라고 지었다. 아들의 중간 이름에 스승의 이름을 넣은 것이다. 그가 스승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레이엄의 회사에서 버핏은 일반적인 투자 업무 외에도 국제 증권 및 외환 시장에 투자하는 일을 하며 식견을 넓혀 나갔다. 오래지 않아 그는 투자 잠재력을 발휘하며 눈부신 활약을 거듭했다. 입사한 지 1년여가 지날 무렵부터 그레이엄은 그를 제자나 직원이 아닌 ‘잠재적 동업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레이엄은 동업자인 뉴먼도 그와 함께 은퇴할 예정이어서 뉴먼의 아들과 버핏이 함께 회사를 운영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버핏은 심사숙고 끝에 스승의 제안을 거절했다.  ‘위대한 스승’ 그레이엄과 함께 일할 수 없다면 이 회사에서 일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약 2년 동안 스승에게 배울 것은 이미 다 배운 버핏이었다. 그동안 스승에게 배우는 한편으로 독학으로 자기 고유의 투자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 온 터였다. 예컨대 그레이엄은 분산 투자를 엄격하게 지키는 데 비해 버핏은 충분히 저평가된 회사라면 ‘많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집중 투자가 분산 투자보다 수익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봤다.

(출처 : 책 ‘위대한 멈춤’, 박승오, 홍승완 저)

 

버크셔 헤셔웨이 인수

 1965년 버핏이 버크셔해서웨이 경영권을 확보할 당시만 해도 이 회사는 미국 직물산업의 중심지인 뉴 베드포드에 자리 잡은 섬유회사였다. 버핏은 1962년 버크셔의 주식을 7.62달러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섬유산업의 침체와 함께 몰락해가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자사가 보유한 공장을 하나둘씩 팔기 시작했고, 확보된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패턴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자사주 매입을 시도할 때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팔겠다는 계산이었다. 버핏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버크셔해서웨이 임원이 버핏에게 얼마에 주식을 팔겠느냐고 물어왔고 당시 버핏은 11.5달러에 주식을 팔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메일을 통해 전달된 공식제의는 합의와는 내용이 달랐다. 해당 임원은 버핏의 주식을 합의된 가격보다 12.5센트 낮은 가격에 매입하겠다고 제의한다. 이에 분개한 버핏은 버핏은 버크셔 주식을 팔 계획을 접고 공격적으로 주식을 사들인다. 그렇게 경영권을 확보한 다음 한 일은 해당 임원을 해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크셔해서웨이 인수는 워런 버핏이 실수라고 밝힌 투자다. 그것도 ‘내 인생 최악의 투자 결정’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복수심 때문에 몰락해가는 섬유사업을 20년이나 쥐고 있어야 했다. 이후 버핏은 “투자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돌이켰다. 

 

투자철학

출처 : 비지니스 인사이더 (미국)

Warren Buffett’s 23 best quotes about investing

 

1. 가격은 주식의 일부분이다 

BUYING A STOCK IS ABOUT MORE THAN JUST THE PRICE.

 

2. 천재만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YOU DON’T HAVE TO BE A GENIUS TO INVEST WELL.

 

3. 투자를 단순하게

BUT, MASTER THE BASICS

 

4. 주식이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선 안된다 

DON’T BUY A STOCK JUST BECAUSE EVERYONE HATES IT.

 

5. 훌륭한 경제는 문제를 덮어 감출 수 있다

BAD THINGS AREN’T OBVIOUS WHEN TIMES ARE GOOD.

 

6.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라 

ALWAYS BE LIQUID

 

7. 문제에 빠진 회사를 노린다 

THE BEST TIME TO BUY A COMPANY IS WHEN IT’S IN TROUBLE.

 

8. 주식은 위기를 빠져나와 상승하기 마련이다

STOCKS HAVE ALWAYS COME OUT OF CRISES.

 

9. 신데렐라처럼 주식 시장에서 넋을 놓지 말라 

DON’T BE FOOLED BY THAT CINDERELLA FEELING YOU GET FROM GREAT RETURNS.

 

10. 장기 계획을 세워라 

THINK LONG-TERM.

 

11. 영원히 투자할 각오로 주식을 사라 

FOREVER IS A GOOD HOLDING PERIOD.

 

12. 바보도 경영할 수 있는 회사를 사라 

BUY BUSINESSES THAT CAN BE RUN BY IDIOTS.

 

13. 모두가 겁을 먹을 때 욕심을 부려야 할 때다 

BE GREEDY WHEN OTHERS ARE FEARFUL.

 

14. 모든 기회를 다 잡을 필요는 없다 

YOU DON’T HAVE TO MOVE AT EVERY OPPORTUNITY.

 

15. 정치 현안과 거시 경제는 무시하라

IGNORE POLITICS AND MACROECONOMICS WHEN PICKING STOCKS.

 

16. 많이 거래할수록 이윤은 줄어든다

THE MORE YOU TRADE, THE MORE YOU UNDERPERFORM.

 

17. 가격과 가치는 다르다 

PRICE AND VALUE ARE NOT THE SAME

 

18. 복잡한 투자는 피해라

THERE ARE NO BONUS POINTS FOR COMPLICATED INVESTMENTS.

 

19. 훌륭한 사업가는 곧 훌륭한 투자자다

A GOOD BUSINESSPERSON MAKES A GOOD INVESTOR.

 

20. 세금을 너무 두려워할 것은 없다

HIGHER TAXES AREN’T A DEALBREAKER.

 

21. 변함없는 회사가 좋은 투자 대상이다

COMPANIES THAT DON’T CHANGE CAN BE GREAT INVESTMENTS.

 

22. 시간이 모든 것을 확인시킬 것이다 

TIME WILL TELL.

 

23. 가장 기본적인 원칙 – 돈을 절대 잃지 마라

THIS IS THE MOST IMPORTANT THING.

“Rule No. 1: never lose money; rule No. 2: don’t forget rule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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